디자인 읽기의 글을 읽고 써본다.
개인적으로는 최성민씨의 댓글과 여러 댓글들로 이 이슈에 대한
모든 사안을 둘러 보는 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 오가는 여러가지 논쟁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써 보고 싶어서 짧은 글을 써본다.
1. 해치맨의 활동은 실정법 위반이다?
해치맨의 활동이 위법적인 점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경찰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과 차후 판결이 나온 다음에 결정되는 사안이다. 위법적인 점이 있었는지 아닌지, 그런 사법적인 문제는 차후 밝혀질 것이니 법에 대한 전문가가 나누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 거진 무의미하다고 보겠다.
국내에서 스티커 부착과 관련해 기물파손 등의 혐의로 유죄를 받은 케이스를 검색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 경우는 파업농성중 객차 차량안에 스티커들을 마구 붙이고 페인트로 낙서를 한 경우였다. 하지만 그 외에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는 찾기조차 힘들었다. 그정도로 매우 경미한 범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공기물 파손이라는 개념보다는 그 사안이 가진 정치성에 상당히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사안이 공공기물 파손이라면, 광의로는 모든 공공기물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낙서를 하는 행위들에 충분히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이나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홍대앞이 어떤 모습인지 안다. 수많은 가로등과 도로, 인도, 안전대 등에 붙어있는 스티커들과 포스터들, 낙서들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 없다. 포스터 붙이는 알바들이 자랑스럽게 수금용 인증샷을 찍고 떠나는 모습은 본 적은 많이 봤지만.
2. 서울 시민들에게도 해가 되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해치맨이 스티커를 어떻게, 어디다가 붙였는지 아마 보지도 않고 스티커를 붙였다는 점만 보고 부정적인 의견/코멘트를 한아름 품고 달려드는 듯하다. 최소한 내가 본 해치맨이 올린 사진들은 이게 좋느니, 살 맛이 나느니 하는 홍보물들의 말풍선들에 서울서체를 사용해 거의 서울 홍보물과 비슷한 규격과 모양새로 교묘하게 붙여놓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페인트 캔 몇개, 또는 마커 몇개를 뒷주머니에 넣었다가 아무도 안 본다 싶을 때 쓱쓱 태깅을 하거나, 모델들 얼굴이나 머리에 뿔을 그려놓는다든가. 아크릴칼로 긁거나 찢는다든가. 이렇게 한다고 해도 서울시 홍보물에만 해놓는다, 하면 의미전달은 동일하다. 단지 그게 '서울시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에 누구나 반발감을 가진다는 차이지.
하지만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매우 교묘하고 자연스럽게 말풍선 부분만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홍보물에서 서울시가 전달하려고 한 정보를 보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말풍선 부분은 썩 크지가 않고, 그냥 홍보물에서 양념 식으로 들어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 곳은 아예 '정보'자체가 없던 곳이다. 일본 모델분들께서 살맛이 나느니 좋느니하는 '서울시의 의견'을 표현하는 부분에 '서울 시민의 의견'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활동의 이런 플랫폼에 가까운 성향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글 사이트 도구로 만든 홈페이지에 대한 경찰의 질문을 상기해보라) 만약 이런식으로 디자이너들이나 학생들이 따라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테고, '디자이너가 반대하는 디자인서울'은 또 하나의 정치적 공략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게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럴 수 있다는 것)
어쨌든, 이 해치맨의 활동에서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서울시민들에게는 정말 불쌍함마저 느낀다. 잘 보이지도 않는 홍보물 구석에 바뀌었는지 알아보기도 힘든 스티커 한조각 한조각마저 눈에 띄는 사람들, 아마 자기 칫솔에 솔이 몇개인지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섬세한 분들일 텐데 서울의 거리를 걷는 하루하루에 차라리 맹인이 되는 게 나을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OME!
3.디자인 서울 자체에 대해
논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해치맨의 활동의 배경이 되는 일이니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크게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 현 대통령부터 시작되어 오세훈 시장이 해오고 있는 '디자인 서울' 사업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이다.
서울은 정말 크고 기묘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미군들이 그러곤 했다. 이렇게 크고 정신없는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고 -물론 그들의 생활반경은 대체로 이태원을 넘지 않았지만. 서울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의외로 보고 즐길 것들이 많다. (그 중 일부는 약간 컬트-오덕하나)
나는 서울이 좋지는 않다. 여유를 느낄 수 없이 바쁘고 길거리는 노점상이며 간판이며 찌라시들에 정신이 없다. 나는 서울이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고 깨끗하고, 어떤 면에서는 예뻤으면 좋겠다. MARK 매거진에 소개되는 건축물이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고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있을 때 의자가 더 편안하고 심미적이었으면 좋겠다. 지하철 운행정보 시스템의 UI가 누가 봐도 좋다고 할 만큼 뛰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한번에 이루어지길 바라지도 않고, 또한 모든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있는 서울의 현재 모습은...그렇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모습이다. 도시의 모습은 때로 행정력이 가장 큰 궤적을 그려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은 이전 세기들의 떠오르는 계획 도시도 아니며 잿더미가 된 비극의 도시도 아니다.
행정가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상, 사람들이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이 도시의 간판 문제부터 모든 디자인의 문제들은 서울시민들의 삶의 구조에서 기원하는데, 오세훈 씨의 정책들은 그런 걸 나몰라라 하는 식이다. 한국 상가들의 정신없는 간판들이 딱히 한국사람들이 미적 감각이 떨어지고 정신없는걸 좋아해서 그런가? 생각해보라.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20년 30년, 자식한테 대까지 물려줄 장사를 하고 있으면 자기 얼굴과도 같을 간판을 그렇게 해놓겠는지.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상가의 간판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사업체들이 빠르게 망해서 다른 사업체로 교체되는 산업구조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간판을 예쁜 폰트로 , LED로 돌출간판을 만든다고 그 뼈아픈 현실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발 정신차려라. 크루즈, 오페라 하우스 같은 계획들은 자기 세대의 채우지 못한 욕망을 위하여 행정력을 엉뚱한 곳에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떠올리게 할 정도다.
'서울은 원래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해치맨의 (정확히는 사이트에 올린 누군가의) 문구다. 내가 서울이 딱히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서울의 원래 모습부터 생각해보려는 자세가 너무나 그 스티커가 붙여지는 곳과 시간에 시의적절해서 그러하다. 해치맨의 경찰 조사는 지난 몇년간의 인간 경시의 자세가 뚜렷하게 보였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과 정책들과 맞물려, 정책들에 비판, 아니 제대로 된 비판도 아닌 작은 의견들조차도 듣지 않으려는 디자인총괄본부와 시정의 노골적인 자세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슬슬 30년이 되어가는 광주대단지사건에 대한 글을 어제 읽으면서, 참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짐 하나 더 얹어놓고 뒤로 걷어차는 세상이 적어도 내가 자라온 동안은 하나도 안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든, 시장이 바뀌든 시의회가 바뀌든, 이런 것들에 덤덤하게 보고 있는 시민이 바뀌어야 한다. 해치맨의 스티커 붙이기는 그런 면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는 것 같다. 해치맨에게 고마움마저 느낀다.